지난 2년간 공공의 적이었던
팬데믹의 끝자락의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지면서
모두에게 갑자기 닥친 공통의 팬데믹이 개개인에게는
각기 다른 모양의 팬데믹으로 들어왔고
나 또한 2020년 1월부터 지금까지 2년간 겪었던
우리가족 팬데믹 극복기 대해서 글로나마 좀 털어놓고 싶다.
작년에는 백신조차없어서 전 세계가 멘붕이었는데
이렇게 접종을 완료하고 보니
인생지사 塞翁之馬 (새옹지마)라는 말이 딱 떠오른다.
모더나 1차 접종 --> 2021년 9월 13일
모더나 2차 접종 --> 2021년 10월 18일
원래 예정대로는 1차 접종 후 6주 이후라고 했었는데
지난주 내 비서로부터 접종 일시가 앞당겨졌다는 문자가 왔다.ㅎㅎㅎ
작년 초 코로나19 때문에 (첨에는 우한 폐렴이라고 했었지)
우리 가족도 한동안 혼란기를 거쳤다.
단순히 국내 코로나 확산 때문에 빚어지는
나의 업무 차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 뉴욕 맨해튼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딸의 주위 환경이 예사스럽지 않았고
매일매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여러 통신매체들은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정작 미국은 먹통이었고 아예 팬데믹에 대해서
수긍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정~말 웃기는 것은
작년 2020 1월 중순부터 우리나라는
이 바이러스 사태의 심각성을 예상하고
발 빠르게 대처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마스크를 쓰고
심지어는 마스크 대란이 벌어져서
마스크 공장주들이 일생일대의 대박을 맞았고
교육계에선 온라인 비대면 수업을 위한 시스템을 신속히 도입하고
직장인들은 재택근무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할 때
미국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정말 답답했던 게
얘네들은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조차도 없이
그냥 버젖~~ 이 코로나 이전과 똑같이 생활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딸에게
"엄마 말 안 듣고 계속 거기 있을 거면
빨리 아마존에서 마스크 300장 주문해.
며칠 지나면 아마존에서 마스크도 못할 수도 있고
운 좋아서 주문한다 하더라도
장당 만원은 넘어갈 거다"
라고 말을 하니,,,, 딸이 하는 말이
"엄마~ 누가 한국 엄마 아니랄까 봐 ㅎㅎ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이러는 거다. 그때 깨달았다.
소속되어있는 집단과 조직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ㅎㅎㅎ
그런데 그런 후 딱 3일이 지나서
딸이 등굣길에 전철을 탔는데
마스크를 쓴 동양인들이 한둘씩 눈에 띄더라는거다.
그제서야 엄마말이 생각나서 바로 아마존에
검색을 하니 마스크 10개 이상 판매가 안되고
10개를 산다고 하더라도 평소보다
5배 정도 오른 가격이라던 거지.
그런데도 그 나라 백인. 흑인들은
마스크를 쓸 생각을 안 하더라는 거야.
오히려 마스크를 쓴 동양 애들한테
코로나 옮기고 다닌다고
그때부터 슬슬 눈치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고 딱 1주일 이후부터
동양인 증오범죄가 시작되었다.
그제야 딸이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니
편도 80만 원 하던 게 150으로 올랐다고 하면서
더 큰 문제는 그 나라 교육부가 외부 상황이
그 지경이 되었는대도
트럼프와 뉴욕주지사 발언 때문에
(그냥 단순 독감일 뿐, 마스크가 해답은 아니다)
수업중단이던 학교폐쇄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학생들은 매일같이 등교해서
단체로 수업을 받고 있던 상태라
딸도 티켓을 예약하고 또 연장하고,
예약하고 또 연장하면서
티켓값이 매일매일 올라가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생각했다는 게
엄마가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 사태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고
결국에는 초기대응을 빠르게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런 와중에도 한국 간 미국 국제선은
점점 닫혀가고 있었고
딱 그 시점, 딸 학교 학생 몇 명이
코로나 확진이 되면서 학교가 폐쇄되고
(때마침 뉴욕 중심부 자체가 락다운 되어서 대중교통도 마비가 되었었다.)
학생부 어드미션 미팅하고, 비자 상담하고,
장학금 어찌 되는지 확답받고
(뉴욕 집세가 계속 지출되어야 하니)
딸은 뉴욕 자기 골방을 그대로 둔 채로
옷이랑 소지품만 챙겨서 기약 없는 탈출에 성공했다.
그때 딸이 미국 탈출을 안 했으면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마트장을 보러 가는 것조차
목숨 걸고 나가야 할 상황이었을 거다.
(동양인이라는 죄로)
그때가 2월 중순이었고
난 그날을 우리 집 엑소더스 (성서:출애굽기)라고 부른다.
딸이 들어오자마자 한미 간 비행기 노선은 대폭 줄었고
편도비용이 300~500만 원을 호가하고
결국에는 돈 없어서 그때 들어오지 못한
딸 친구들은 짱 박혀 버티면서
외부 흑인난동을 고스란히 접했고
거의 6개월을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아마 미국도 2020,1월~2월 사이에
초기대응만 잘했었다면
그렇게 까지 확진자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 본다.
한국도 코로나 상황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Home 이라는 내 가족과 겪는 코로나는 심리적으로 위안이 되었을 것이고
미국 대학도 비대면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을 했었기에 학업에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날아온 메일 한통 때문에
가을학기를 위해서 미국으로 다시 갔다.
더 이상 모국에 체류할 시에는
지원하는 장학금은 없기 때문에 휴학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예 1년 휴학하고 코로나가 잠식되고
아시안 증오범죄도 수위가 좀 낮아지면
그때 다시 미국 들어가는 거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휴학을 권했다.
딸이 살짝 망설이긴 하더라.
그런데 딸 생각은, 한국에 있고 싶긴 하지만
자기 전공분야의 미국 박사과정 수료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1년을 쉬어버리면
아예 공부를 손 놓게 될까 봐 무섭다고
그게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
대신 자기가 미국을 탈출할 때의 상황과
다시 Go back 할때 상황을 비교한다면
환경적으로 많이 다름을 느끼고
많은 것을 준비해서 돌아갈 수 있다고
일단 들어가서 두문불출하면서
골방에 박혀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서
버티겠다고 자신 있다고 말했다.
가끔 밖에 나가면 사람이 무서웠다고 한다.
전철역에 서 있으면 누군가가 갑자기
뒤에서 밀칠 것 같아서 벽에 딱 붙어 서있었다고 했다.
어느 날인가는 울면서 내게 전화가 왔었다.
전철역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흑인들이 자신에게
"Go back to your country!"
하면서 침을 뱉드라는 거다.
너무 놀라고 화가 났지만
맞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달랬다.
(그 일이 있은 후 1달 동안 밖에 안 나갔단다)
이미 딸은 2개월 전에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스크도 않쓰겠다,
백신도 않맞겠다 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강하게 외치던 그 나라 사람들도
정부에서 기간을 걸고 100달러 준다는 캠페인에
속전속결로 백신을 맞기 시작했다 한다.
피해가 어마 무시했던 유럽의 국가들은
누구보다 먼저 With Corona를 외친다.
미국은 아직 완전히 With Corona라고
공표는 하지 않았지만
거의 With Corona에 가깝다고 한다.
지금 뉴욕 거리에는 With wearing masks과
Without wearing masks가 공존하고
이제는 동양인에게 Go back to your country
라며 소리 지르고 침 뱉고 때리지 않는다.
다시 한번 인종간 평화가 찾아왔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미국-> 한국-> 미국을
오갔던 딸이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엄마, 우리나라 사람들 일 잘해. 행정업무도 짱이고.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잘 살고,
학문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우수하고
경제적으로 부강한 것도 맞는데
그건 미국이라는 큰 나라라서 그런 거지."
"한국인 Vs 미국인 개개인으로 보거나,
한국사람들 Vs 미국 사람들 집단으로 보거나,
그렇게 했을 때는 우리나라 사람이
헐~~ 씬 능력이 있어."